점차 부동산의 가치가 올라감에 따라 수많은 아파트는 거주를 위한 집을 넘어선 경제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아파트의 수요는 그 의미가 변질되었을지라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현재 아파트는 대한민국에서 그 수가 가장 많고, 또 가장 주요한 주거 형태가 되었으며, 아파트는 지금도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초기, 중기의 아파트들은 현재 노후화와 안전 문제로 인해 재건축 연한이 다가오고 있다. 한 두 채가 아닌, 무려 60여 년간 지어져 온 아파트 단지들이 차례로 노후화하고, 따라서 차례대로 재건축해야 하는 순환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한국은 계속해서 아파트를 지어내고 있으며, 지어진 아파트들은 모두 언젠가는 재건축을 해야 하는 아파트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가 가장 많은 주거의 형태가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아파트 거주경험을 가진 세대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50대의 나이에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세대가 있는가 하면, 20대, 10대,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도 있다. 이러한 세대의 분리, 아파트에 대한 입장의 다양화가 새로운 세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나뉜 세대에 맞추어,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아파트키즈라고 한다. 어느 아파트의 몇 동 몇 호에서 태어나, 단지 내의 놀이터에서 옆 동 친구와 아래층 친구를 만나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고, 단지 내의 상가에서 군것질하고 단지 앞의 초등학교에 다니며 단지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던 것이 아파트키즈가 가지는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키즈들은 이전 세대가 가진 고향에 대한 애착을 자신의 아파트 단지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서 착안하여, 아파트키즈의 ‘아파트 애착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재건축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단지 경제적 논리가 아닌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함께 고려한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애착이 되는 대상들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존재하여야 하며, 적어도 그곳에서 나고 자란 한 세대의 사람들이 그 장소에 고향으로서 뿌리내릴 수 있고, 지속해서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만 한다. 애착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장소를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것만으로 더 좋은 공간이 될 것이다. 이런 새로운 재개발 방식은 기존 재개발이 투자와 회수의 의미만을 갖는 것에서 벗어나서, 단지 내의 각각의 공간들이 각기 다른 시간대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든다. 그것들은 다양한 세대의 장소가 될 것이고, 다양한 세대의 고향이 될 것이며,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할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설계방식을 보면 다른 건축의 방식과 달리 유기적으로 공간을 설계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파트들과 유사하게 정형화된 아파트의 평면을 구성한 뒤, 그 평면을 층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층한다. 그렇게 적층한 각 동을 향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배치하고, 아파트 경계에 담을 세운 후, 남은 부분에 녹지를 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천 가구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이렇게 한 두 사람의 기계적 설계에 의해 설계된다. 실제로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은 순차적으로 다양한 공간들을 거쳐 감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특정 부분만을 집중하여 설계하고 공간을 연결하는 사이 공간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는다. 분절된 방식의 설계는 각 프로그램간의 교집합을 설정할 수 없기에 각 부분은 자신의 프로그램만을 수행한다. 따라서 애착이 생길수 있는 조건이 없는 공간들이 무분별하게 아파트의 곳곳에 산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내 애착이 끊어지는 공간들인 이동공간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산재되어 있는 비애착공간을 애착공간으로 개선하고, 단지의 입구부터 내 집까지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파트키즈로 하여금 아파트의 곳곳에 더욱 다양한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특정 공간에 애착을 느끼는 방법으로는 공간에 대한 인지 정도를 향상시키는 방법, 공간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방법과 그 공간에서의 활동 빈도를 증가시키는 방법이 있다. 명명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스쳐 지나갔던 공간을 명확하게 누군가의 사용 및 관리 구역으로 지정하게 될 경우, 사용자겸 관리자가 된 그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간에 대한 인식이 생기며, 공간을 사용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더불어 그 공간은 일정한 감정까지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따라서, 인지, 감정, 행동의 세 가지가 가장 잘 통합된 개선 방안은 공간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쓰는 공공공간은 특별한 주인이 없어 그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기기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공간이 되면 그 공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의 물건을 가져다 놓고, 아래층 사람과 그 장소에서 모이고, 쓰레기도 줍는 등의 공간에 대해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그 특정 공간에 이름을 붙여 주인을 정해주되, 그 공간을 완전히 밀폐된 사적인 공간이 아닌 기존의 성격을 일부 유지한 반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고자 하였다. 완전히 밀폐된 사적 공간은 공공공간의 면적 축소의 결과로 나타날 우려가 있으며, 또한 이 공간이 온전히 나의 공간인 집과 달리,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당사자가 주된 사용 및 관리자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통로로써만 기능했던 복도는 주변에 오픈된 각 세대의 개인앞마당이 되고, 확장된 공간은 각 세대의 별채가 된 반사적-반공적인 공간은 그 공간을 주인으로 하여금 그 공간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늘어 애착 역시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현재는 비-애착공간인 유휴공간들을 개개인에게 나누어 반사적공간으로 만들어 사유화하면 공간에 대한 애착도를 높일 수 있다.
여전히 도시를 고향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제 도시는 많은 사람에게 고향이 되었다. 도시성은 고향과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흔히 논의되지만, 대도시인 서울 역시 누군가의 고향인 것처럼, 현재 한국의 도시성은 아파트라는 형식 안에 모여져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만큼, 아파트는 우리의 주거 형식이고, 우리의 고향이 되어가고 있으므로, 이를 보존하고 개선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고치고 다시 써 누군가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아파트가 여전히 남아있기를 바란다. 이제 막 시작된 아파트의 장소성에 대한 담론에 이 프로젝트가 작은 날갯짓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