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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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 서울의 저층 주거지
 계단형 가로, 좁은 보행로, 부정형 필지, 열악한 주거환경. 모두 저층주거지를 설명하는 단어들입니다. 서울시 주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저층형태의 주거지는 서울 도심이 급격하게 확장되던 60년대 지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마흔살을 훌쩍 넘어 노화된 이들은 정비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어떤 정비사업은, 모순적이게도 열악한 환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마을의 역사, 커뮤니티, 사람도 아닌 건물의 ‘노후도’를 기준으로 지도에 선이 그려지고, 이제 그 선은 이쪽, 그리고 저쪽 도시를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선이 됩니다. 한 쪽이 더 높이, 더 넓게 유토피아를 만드는 동안 다른 한 쪽은 더 소외되고, 더 작아집니다. 그렇게 꽉 채워진 도시 사이에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남아있는 저층주거지는 그저 ‘언젠가 재개발 될 곳들’ 로 취급되고 맙니다. 이것이 현 시대, 서울이 가진 가장 보통의 얼굴입니다.

#2 아현동의 변화
 아현동은 2010년대에 들어 급격한 변화를 맞았습니다. 어둡게 드리운 고가도로는 철거되고, 수십년간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던 유흥업소들이 하나 둘 씩 자취를 감췄습니다. 수천가구에 달하는 대단지가 들어서기 무섭게 남김없이 분양되었습니다. 재개발 사업이 하나같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공’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추억이 깃든 포장마차는 미관상의 이유로 철거되었고, 아현시장 골목에는 더 이상 흥겨운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사라진 유흥업소들이 내버려두고 떠난 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건물들은 그 흔적을 못 다 지운 채 거리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아파트의 높고 두터운 절벽 아래 굴레방로, 이 곳의 시간은 멈춘 듯 합니다. 느릿한 노인의 발걸음만이 길 어귀마다 서린 추억을 기억하고 더듬습니다. 

#3 남겨진 노인
 그 자리에 계속 있었을 뿐인데, 남겨졌습니다. ‘노인’이라 함은 65세 이상의 인구로 대부분이 은퇴자입니다. 서울의 노인 비율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봅니다. 저층주거지의 노령화지수는 아파트 단지보다 2배 가까이 높습니다. 저층주거지에 상대적으로 어린이는 적고, 노인은 많이 거주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우리 도시 서울, 보통의 얼굴을 한 우리네 동네에는 서로 다른 도시 조직의 격차, 그리고 세대의 격차가 하나의 풍경 안에 나란히 존재합니다. 어떻게 하면 단절된 조직이 벽을 허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벌어진 세대가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4 가장 보통의 동네
 보통의 동네 아현동이 있습니다. 아현동의 현실은 답답해보이지만 되려 그렇기 때문에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에 잠재된 요소를 다정히 바라보고 새로운 정체성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아주 작은 변화를 통해 기존의 길이 큰 것과 작은 것을 잇는 곳으로, 또 큰 것과 작은 것이 만나며 교류하는 장소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동네에는 예외없이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어린이가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모든 동네, 그리고 모든 집에 노인이 있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요? 보통의 동네는 노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동네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와 노인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그 곳에서 노인과 아이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을 채워줄 수 있는 관계가 됩니다. 혼자서는 만들 수 없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가장 보통의 동네로서, 아현동이 그릴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