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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그녀의 흔적을 따라서

 문준경 전도사는 1950년대에 신안군 증도를 거점으로 수십 개 섬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위해 희생적 삶을 살다가,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주민들은 그녀를 ‘증도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일컬었다. 그녀로 인해 증도의 약 90% 주민이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그녀를 기리는 기념관과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순례의 목적은 대상이 되는 인물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는 것에 있다. 이 때문에 단지 지금의 순교 기념관이나 묘지에 가보는 것을 넘어서 그녀의 발자취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증도 이곳저곳에 남겨진 문준경 전도사의 종교적 희생에 대한 가치를 확인하고, 경험하도록 주요 공간을 순례길로 재구성했다. 순교지, 노두길, 해안가 기도원의 중심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베이스캠프인 필그림하우스가 순례의 이정표가 된다. 문 전도사의 희생적 삶을, 동선과 공간감으로 재해석하여 우리는 순례를 통해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 문 전도사가 느껴왔던 고통, 인내, 고독함 그리고 죽음을 순례길에서 경험하게 된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 여정은 고립된 섬에 가는 길과 갯벌, 물 밑 지하 등의 비일상적 공간을 지나면서 구체화된다.

-순교지 기도원
 6.25 전쟁 당시 증도를 장악한 인민군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근 섬에 있던 문준경 전도사는 이를 막기 위해 다시 증도로 되돌아갔다. 여러 차례의 폭행과 폭언 속에서도 주민들은 해치지 말라는 그녀의 호소가 이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슬픔의 정적이 퍼져갔다. 순교지 기도원은 순교 전, 후를 상징하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첫 번째 공간은 평상시엔 은은한 빛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하지만 밀물 때가 되면 지붕과 벽면으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그때의 상황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두 번째 공간은 상대적으로 더 짙은 어둠과 불규칙한 계단을 통한 하강동선으로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가장 밑바닥에 내려가고 나서야 작은 문이 보이게 된다. 문에 들어서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자극하는 빛을 따라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노두길 기도원
 물때가 있는 뻘 위를 걸어가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이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증도 맞은편에 있는 화도 주민들의 전도만을 위해 아랑곳하지 않고 반나절 거리의 뻘을 몇 번이고 건너갔다. 때때로 시간을 잘못 맞출 때면 발 위로 점차 잠겨오는 물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노두길 기도원에서 순례자는 직접 뻘 위를 걸어가 보며 그 당시 그녀가 느꼈을 상황과 감정을 경험한다. 이곳의 기도원으로 가는 길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순례자는 인근에 비치된 순례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온몸에 진흙이 묻어가며 어딘가에 있을 기도 터를 찾아 나아간다. 그러다 비로소 발견한 곳에 자리를 잡고 그 순간의 감정과 마음을 다해 기도를 드린다.

-해안가 기도원
 문준경 전도사는 작은 나룻배를 타고 수십 개의 섬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그 나룻배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려 그녀의 중심을 잃게 했다. 그녀의 손목과 발목은 언제나 부어있었고 온전치 못했다. 해안가 기도원은 그 원인이 되는 바람과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중앙부 물 위에 떠 있는 공간과 가장자리 끈에 매달려있는 조개들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순례자의 무게, 바람, 파도에 의해 서로 부딪치며 이 공간을 새로운 음색으로 물들인다.

-필그림 하우스
 각 기도원으로 향하는 길의 중심점이 되는 곳에는 순례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위치한다. 그들은 여기서 각 순례지를 향해 3갈래 길로 흩어지고 다시 모여 그들의 경험을 나눈다. 동선의 중앙에는 공공시설이 위치하며 각각의 숙박 건물은 서로의 시야를 최소화하고 각 동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설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