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비싼 티켓 없이 갈 수 있는 음악당이다. 전도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할 때의 교회는 엄숙하다. 교회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교회는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결혼부터 슬픔과 애도의 장례까지 인간의 일생에 있어 중요한 의식이 치러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교회는 유치원과 공부방을 운영하며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교회만큼 복합적인 프로그램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은 흔치 않다. 그러한 교회는 많은 신자가 재단 위 한 명의 목사를 바라보는 구조로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는 음악당의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음악당과 다른 점은 교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주일마다 100명 이상의 교인이 예배를 드리는 후암백합교회는 후암동 일대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다. 차 하나 정도 지나갈 수 있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후암백합교회는 예배당이 있는 본관과 유치원과 식당이 있는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본관 앞 8m 폭의 주차 공간은 도로와 합쳤을 경우 12m 정도의 이벤트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믿음과 사랑의 전도라는 교회의 이념과 달리 교회의 모든 의식과 행사는 두 개의 건물동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는 폐쇄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대상지는 작은 골목길을 통해 근처 주거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마땅치 않은 외부 공간 때문에 건물 내부가 아니면 교인과 비교인 모두 머물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에 건물의 내부만이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건물 일대의 공간이 모두 교회의 영역으로 읽히는 자기장 같은 교회를 제안한다. 먼저 기존 교회 건물과 인접한 세 개의 필지를 매입하여 여섯 개의 동을 신축하는 방식을 취한다. 분동을 통해서 기존 교회의 프로그램이었던 예배당, 식당, 유치원, 도서관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거 시설과 여행자를 위한 숙박 시설을 나누고, 사이마다 성격이 다른 마당을 만든다. 예배당과 식당 건물동 사이의 마당이 야외 피크닉이나 마을의 김장철을 위한 장소로 쓰이고, 소모임실과 유치원 건물동 사이의 마당은 작은 야외 예배당이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마당은 인접 건물동의 프로그램과 연계하며 그 성격을 달리하며 이벤트 공간으로서 가변적 성격을 갖는다.
남산 산자락에 위치한 후암동의 특성은 건물이 땅에 놓이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경사로에 대응하기 위해 인근 다세대 주택에는 기단과 계단, 높이가 다른 담장 등 다양한 수직적 장치가 나타난다. 대상지는 동서 방향으로 최대 3m의 고도차가 있지만 남북 방향으로는 고도차가 거의 없다. 이에 동서 방향으로는 건물이 놓일 때 작은 계단과 기단이 놓이고, 남북 방향으로는 소모임실이 있는 선큰 가든부터 예배당, 예배당 앞 광장, 도서관 위 스탠드형 계단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켜를 쌓고자 했다. 이러한 작은 개입은 후암동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을 차용한 방식으로 좁고 단조로웠던 대상지 일대의 공간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
프로젝트는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진 기존 교회 건물 사이의 공간이 교회의 영역으로서 확장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공공성을 갖는 교회의 특성을 고려하여 신축되는 교회가 후암동 일대에 점 조직처럼 침투할 수 있도록 필지를 선정하고, 성격이 다른 마당을 조닝했다. 건물들은 기존 교회의 프로그램을 유지한 채 지역내 교회의 상생 방법을 고려한 주거와 숙박 프로그램을 모두 수용한다. 마당들은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 위치한 건물들 사이에서 가변적인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된다. 기단과 계단, 처마, 선큰 가든, 스탠드형 계단 등 작은 개입은 교회 영역 일대를 공간적으로 풍부하게 함과 동시에 후암동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교회는 단순히 건물 내부에만 종속되지 않으며, 교인과 비교인 모두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