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Blin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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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교도소 수형자들은 감시와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면서, 또한 대부분 곧 사회로 돌아올 시민이다. 이들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부터 오히려 시민들이 책임을 져 주어야 하는 사람까지, 내면의 악을 가진 사람부터 사회의 악을 대신 짊어진 사람까지 다양하다. 현대의 교도소는 타자화, 이율배반적인 혐오, 그리고 자기 위선의 대상이다. ‘경제적’인 교도소는 형기를 늘리는 교도소가 아니라, 재범 방지에 성공하는 교도소이다. ‘사회적’인 교도소는 선량할 수 있었던 시민들에게 범죄를 가르쳐주는 장소가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잘못된 수단을 교정해주는 장소이다. ‘윤리적’인 교도소는 수형자들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고 관리 효율을 위해 가석방을 시키는 곳이 아니라, 최소 비용으로 수형자들을 재사회화시켜 잠재적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게 하는 곳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첫째, 마치 북유럽의 노동교화소들이 그랬듯이, 수형자들을 나누어 사회로 돌아올 집단을 분화시켜야 한다. 둘째, 수형자들을 도시 안에 두고 노동, 생산, 소비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자본주의에 귀속되지 않은 시민은 없는 사람이고, 자본의 순환에서 떨어져나간 결과는 치명적이다. 셋째, 교도소의 인구 밀도를 적절히 통제하여 효율적인 감시를 도모해 기존의 교도소보다 비용을 줄여야 한다. 밀도가 낮은 경우 인구는 서로를 감시한다. “개인들은 고정된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통제되며(푸코)”, “구별된다.(푸코)” 교도소에서 서열과 폭력이 쉽게 생기는 이유이다. 반면 밀도가 적절히 높아지는 동시에 개인들의 사회 복귀 의지가 강한 경우, 그들은 ‘도시적 상황(드로보)’에 처하게 된다.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익명성은 커(김진애)”지며, 사람들은 “그들의 심리-지리적psycho-geography 충동(드보로)”에 따라 도시를 누비고 다닌다. 이 상황은 수형자들의 재사회화에 기여하게 되는데, 그것은 탈사회화의 원인이 “수감생활의 반자연적이고 무익한 행위(푸코)”들로 인해 발생하고, 현대인의 자연적이고 유익한 행위란 도시적 상황 안에서 주체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도소는 안과 밖에 도시를 가지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며, 교도소를 조합하고 쌓아 기존 교도소의 몇 배의 인구 밀도를 가진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형태에서 발견된, 도시적 형태들에 수납된다. 이들은 인구 밀도를 시간대별로 통제하는 도구가 되고, 처벌과 재사회화를 동시에 수용하는 교도소를 만든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먼 자들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