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주로 5월 말부터 9월 말까지 내리며, 강수량은 7,8월에 가장 많다.
떨어진 빗물들은 지반으로 흡수되어 토양을 적시고, 그렇게 토양을 따라 흐른 비는 강으로 모여 끝내 바다가 된다. 도시를 유지하는 데 비는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비는 축복이다. 그러나 비는 동시에 재앙이기도 한다. 콘크리트를 적신 비는 땅을 무르게 하고, 지반을 침하시키는 등 도시에 갖가지 불안정을 초래한다. 이에 맞서 인간은 “빗물펌프장”이라는 도시계획시설을 개발하게 된다.
서울특별시에는 총 114개의 빗물펌프장이 존재한다. 빗물펌프장은 5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약 155일, 1년 중 42%의 기간 동안 동적 공간이 된다. 이에 반해 211일, 58%의 기간 동안 정적 공간이 된다. 확장이 아닌 재발견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도시 발전 속 1년의 반 이상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앞선 공간은 몹시 비효율적인 공간인 것이다.
이에 나는 비어 있던 211일의 시간에 도시에 다양한 숨결을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을 짓는 동시에, 하나의 목적으로만 운영되던 155일의 시간에 새로운 역할을 제안한다.
본디 하나의 대지였던 군도는 ‘물’이라는 요소로 인해 단절되고, 각각 다른 섬으로 인식된다. 암초는 섬이 될 수 있었고, 섬은 암초가 될 수 있었다. 과연 시간에 따라 본 공간이 하나 또는 두 개 또는 세 개가 된다면 사람들은 변화된 공간을 이전과 같다고 인식할 수 있을까. 하나의 목적, 하나의 형태, 하나의 공간으로 멈추어 있던 빗물펌프장이 ‘공간의 시간성’이라는 개념 속에서 시간(비 또는 빗물)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으로 구성된다면, X,Y,Z 축으로 정지된 공간이 아닌 X,Y,Z,T(time)의 가변적인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은 시간에 의해 변화되고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건축가는 그 시간을 설계해 공간을 만든다. 비어있는 시간을 채우고, 채워진 시간을 비워내며 도시계획시설 중 하나인 “빗물펌프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