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 새신길 새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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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북역세권사업 x 염천교 수제화 거리 건물 재탄생 프로젝트
대지

충정로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길에는 다리가 하나 있다. 그곳에는 1960년대 한국 최초의 수제화 거리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새 신을 사 신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그곳이 지금은 발길이 끊겨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풍경이 되었고, 관심이 끊긴 건물과 사람은 늙어간다. 곧 진행될 서울역 북역세권 개발 사업으로 인해 이제 이 건물도 사라질 예정이다.

1960년대의 맞벽 건축으로 나누어져 있는 필지가 마치 하나의 건물로 인식된다. 1층에는 수제화 상점들이 길을 따라서 나열되어있고, 2층 역시도 수제화상권과 가죽공장들이 존재한다. 3,4층은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용산을 기점으로 미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수제화 구두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후 수제화 산업은 급성장하여 염천, 명동을 중심으로 수제화 거리가 형성되었고, 500개가 넘는 매장이 염천교에 밀집되어 있었다. 하지만 1980-90년대 중국산 저가 제화의 수입과 더불어 수제화 공장들이 성수로 대규모 이전을 하게 되면서 염천교 수제화 산업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심지어 2008년 코레일에서는 서울역 북부 유휴부지 및 염천교 수제화 거리 건물까지 전부 철거한 뒤 새로운 호텔 및 컨벤션센터를 짓기 위한 계획을 현재 진행 중이다.

이러한 배경에 더불어 염천교 수제화 상인들의 나이는 노쇠했고, 젊은 층들의 관심은 끊긴 지 오래며, 이 기술과 문화를 이어나갈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과거의 역사와 새로운 거리, 새 신

최근, 젊은 디자이너와 염천교 장인들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작업은 젊은 층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고,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격동하는 시대에서 도태됨은 즉 사라짐을 의미한다. 염천교의 미래에 수제화 산업이 있을 확률은 낮다. 즉, 이 산업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라진다는 것이 모든 것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문화를 기억하고, 이 공간을 기억하고, 다시 새롭게 이곳을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인식될 이 공간은 사라져 가는 문화를 존중함과 동시에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층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나는 기존건물을 리모델링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또한, 기존의 건물과 새로운 건물을 연결짓는 광장을 통해 서울역으로 가는 문을 만들어 무심코 지나치는 공간이 아닌 멈춰 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새로울 신, 새로운 신, 새로울 길, 새로운 광장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