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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상은 우리가 담겨진 세상이다. 우리는 이 속에서 끊임없이 나와 세상에 관한 관계를 파헤친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되는 일상의 몰입은 나와 세상,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 우리는 잠시 이 일상의 몰입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또 다른 세상에 순간적으로 머무르게 할 필요가 있다.

슈필라움 spielraum은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쳐진 독일어이다. 즉 ‘여유 공간’이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다. 이 물의 슈필라움에 들어서면서 몰입하였던 일상의 본래 시간은 점차 멈춰진다. 이 곳은 온전히 내 자신 안의 본질을 경험하는 공간이다. 정적인 행위, 동적인 행위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자신이 원하고 느끼고 싶은 모든 것을 자율성을 가지고 경험하면 된다.   

이 물의 슈필라움에서의 물은 시계를 의미하는 메타포이다. 지구상 존재하는 어떠한 물체이든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임이 있는 순간, 그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의 방향성과 움직임이 서서히 사라질수록 그 물체 자체의 시간성은 멈춰버린다. 물은 이러한 속성을 시각과 더불어 다른 감각으로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물의 슈필라움에 들어서기 전 사람들은 한강을 자연스레 지나쳐온다. 한강 바로 옆길에서, 사람들은 일상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산속으로 진입하면 물의 슈필라움으로 다다르게 된다. 그렇지만 물의 슈필라움 내부로 점점 들어갈수록 물의 움직임은 요동을 치다 이내 움직임을 멈춰버린다.

요동과 고임 사이는 아주 미묘한 차이로 이루어 진다. 물의 요동 또한 움직임은 있으나 시계 바늘이 두 점 사이를 왔다갔다하듯 궁극적으로 방향성은 상실돼 있다. 그렇지만 고임은 말 그대로 완전히 물의 움직임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가둬진 물에 자연적 요소의 유무로 표현이 되었다. 바람은 가둬진 물이라도 미세한 움직임을 만든다. 이는 고여진 물에서 요동치는 물로의 차이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

슈필라움 내부로 들어갈수록 물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어 버리는 것, 그것은 즉 일상의 시간이 점점 잊혀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의 시간이 서서히 멈추는 시퀀스는 마치 자신이 또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꿈같고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꿈의 무의식 같은 공간은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하면서도 마치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낌 또한 준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이 공간은 일상의 몰입을 잠시 벗어난 ‘순간’적인 공간이기도 하기에, 이 물의 슈필라움에서 영원과 순간은 나란히 지속된다.